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창경궁 저승전 (문단 편집) == 위치 == 정확한 [[위치]] 역시 모른다. 다만 기록을 통하여 유추할 수는 있다. 《궁궐지》[* 宮闕志. [[조선시대]] [[궁궐]]의 [[위치]] · [[이름]] · [[연혁]] 등에 관한 [[사실]]을 [[기록]]한 [[책]].]에는 ‘[[창덕궁 건양문|건양문]] 밖에 있는 옛 구현전(求賢殿), 광연정(廣延亭)의 터에 위치했다.’고 적혀있다. 건양문은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에 있는 [[문]]으로, 원래 창덕궁의 동쪽 문이었다가 창경궁이 생기면서 두 궁을 잇는 문이 되었다. 그러니까 건양문 밖은 창경궁 영역이다. 또한 시민당의 북쪽에 있었다하는데, 《[[동궐도]]》를 보면 시민당의 위치는 현재 [[창덕궁 낙선재|낙선재]] 권역의 동남쪽이다. [[창덕궁 낙선재|낙선재]] 영역은 지금은 [[창덕궁]]이지만, 원래는 [[창경궁]]이었다. 이를 종합했을 때, 저승전은 [[창덕궁 낙선재|낙선재]] 일곽의 일부 언저리에 자리했던 듯 하다. 현재 기준으로 보면 [[창덕궁]] 영역에 있었던 것이다. 사실, 저승전이 [[창덕궁]]인지 [[창경궁]]인지는 [[조선시대]] 당시에도 애매모호했다. 《[[명종실록]]》에서는 저승전을 창덕궁 소속으로 적어두었고[[http://sillok.history.go.kr/id/kma_10007014_001|#]], 후술할 1647년(인조 25년)에 저승전을 다시 지을 때에는 창덕궁수리도감에서 일을 맡았다. 그러나 인조 시기 저승전 재건 기록인 《저승전의궤》에서는 어느 곳도 아닌 그냥 동궁으로만 언급했으며, 《궁궐지》와 《동국여지비고》에서는 창경궁으로 적었다. 사실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 자체가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기 때문에 혼동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문서에서는 일단 《궁궐지》에 적힌대로 창경궁으로 분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